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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선(羅洪先)
조정에서 물러난 후 항상 왕문(王門)의 제자인 추수익(鄒守益)과 함께학문을 연마하였다. 강우왕문(江右王門)인 황홍강(黃弘綱)·하정인(何廷仁)을 스승으로 삼고, 스스로 왕수인(王守仁)의 후학으로 칭하였다. 그는 왕수인의 치양지설(致良知說)을 학문의 종지(宗旨)로 삼아 양지(良知)는 결코 자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정(主靜)의공부를 거쳐서 무욕(無欲)의 경계(境界)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양지가 수양을 통해 얻어진다고 하는 이 같은 그의 주장은 왕기(王畿)양지설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여지(輿地)에도 정통하였다. 양명학(陽明學)에 매진한 그였지만 주자학자인 이중(李中)에게서도 배웠다. 실천을 강조한 그의 학문은 주정(主靜)·인체(仁體)·이단(異端)의 삼설(三說)이 가장 특징적이다. 그는 불교를 이단이라고 비판하였는데, 불교의 이론 가운데 유교 이론과 가장 비교되는 특징은 생사관의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즉 유교는 생과 사를 회피하지 않지만, 불가는 생사를 초월하여 잊으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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