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기(金彦璣): 1520~1588. 자는 중온(仲昷), 호는 유일재(惟一齋)이며, 본관은 광산(光山), 주(籌)의 아들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67년(명종 22) 식년시(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만년에 도산과 가까운 가야로 옮겨 살면서 서재를 지어 ‘유일재(惟一齋)’라 편액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남치리(南致利)·정사성(鄭士誠)·권위(權暐)·박의장(朴毅長)·신지제(申之悌)·권태일(權泰一) 등 많은 선비들을 배출하여 당시 안동의 학문융성의 창도자로 알려졌다. 시문 약간편이 『유일재실기(惟一齋實記)』·『용산세고(龍山世稿)』가 있다.
김득연(金得硏): 1555~1637. 자는 여정(汝精), 호는 갈봉(葛峯)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언기(彦璣)의 아들이다. 김기(金琦)·김령(金靈)·권태일(權泰一)·배용길(裵龍吉) 등과 교유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웠다. 생원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출세를 단념하고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증직되었다. 저서로는 『갈봉집(葛峯集)』·『용산세고(龍山世稿)』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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