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이현일(李玄逸) , 1627년 ~ 1704년
본관 : 재령(載寧)
: 익승(翼昇)
: 갈암(葛庵)
시호 : 문경(文敬)
출생지 : 영해(寧海) 인량리(仁良里)
출신지 : 영해(寧海)
분묘지 : 금양(錦陽) 북록(北麓), 1705년 영해(寧海) 신사동(新寺洞)으로 이장했다가 1833년 영해(寧海) 서인량리(西仁良里) 행정(杏亭)으로 이장
입사경로 : 학행(學行)으로 추천, 산림(山林)으로 등용, 1646년(인조 24), 1648년(인조 26) 초시(初試) 합격
내관직 : 사업(司業),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이조판서(吏曹判書)
신비한 기운 속에 태어나다
뛰어난 위인의 탄생 설화에 자주 등장하듯이, 이현일의 탄생도 사전에 예고한 이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 두사충이란 이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왔다가 영해를 지나면서 이현일의 집을 보고, “자색 기운이 1장이나 뻗혀 있으니 저 집에 틀림없이 뛰어난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장씨 부인이 이현일을 임신할 때 태몽으로 오색의 상서로운 기운이 집안 가득 덮여 있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어려서는 장수가 되는 꿈을 키우다
형이자 스승과 같았던 이휘일이 9살의 이현일에게 꿈을 묻자, “오랑캐를 평정하고 요동을 되찾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시 청나라가 요동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살 정도에는 틈만 나면 동네 아이들을 모으고, 단을 쌓고 단풍나무로 깃발을 만들어 팔진도 배열하는 놀이를 하였다. 아이들이 장난하며 말을 듣지 않으면 대장을 엄히 추궁하여 군령을 바로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