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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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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세영(南世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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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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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英陽) |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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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臨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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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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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근남면 행곡1리 샘실 |
출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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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
분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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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근남면 행곡 2리 내앞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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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이야기 |
남세영(南世英)은 본관이 영양이고 호는 임천(臨川)으로 참봉(參奉) 남거(南秬)의 손자이다. 남사고(南師古)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훗날 산림에 은거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어머니를 업고 피난 가다가 왜적을 만났으나 왜적을 감동시켜 죽음을 면하였다. 아버지 병을 간호할 때는 직접 똥을 맛보고 병세를 판단하였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 또 상을 당해서는 여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키며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다. 그 후에 정사(精舍)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이러한 덕행 덕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게 되고 독세사(篤世祠)에 배향되었다. 남세영은 임유후와 주천대에서 자주 교유하였고 평생 스승 남사고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였다. 그는 주천대를 중심으로 지역의 큰 스승으로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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