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양수(張良守)
본관 : 울진(蔚珍)
고려 희종 때 병과에 급제하고 뛰어난 외교관으로 활약하다
장양수(張良守)는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장정필(張貞弼)의 후손이다. 4대손 장말익(張末翼)은 평장사상주국(平章事上柱國)이란 벼슬에 오르고 울진군(蔚珍君)에 봉해졌다. 울진장씨 후손들은 장말익으로부터 울진을 본관으로 삼았다. 장양수는 울진 부원군(府院君) 장말익의 8세손이다. 태어나고 죽은 해는 분명하지 않다.
장양수는 1205년(고려 희종 1)에 진사시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봉익대부(奉翊大夫) 전리판서(典理判書) 상호군(上護軍) 등의 벼슬에 이르렀고 나라에 많은 공덕을 남겼다.
국보의 인물이 되어 울진인의 자긍이 되다
장양수의 사적들은 없어졌으나 진사시 급제 증서인 급제 패지가 남아 있다. 이 장양수 급제패지는 1975년 10월 13일 국보 제181호로 지정되어 경상북도 울진군 고성2리 가원동 월계서원(月溪書院) 국보각(國寶閣)에 소장되어 있다.
장양수의 묘소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1966년 3월에 장양수의 제단비를 세우고 이도중(李度中)이 비문을 지었는데, 이 비문에 오류가 많았다. 그래서 김윤동(金潤東)이 새로 비문을 지어 후손인 장헌규(張憲奎), 장보균(張甫均), 장준택(張俊澤), 장진(張震) 등이 울진읍 고성리 가원동 월계서원 내에 새로운 비석을 세웠다.
또 이듬해인 1967년 10월에 후손인 장헌규, 장인환, 장영철, 장진 등이 「실기(實記)」를 바탕으로 남진영(南軫永)이 지은 비문을 새겨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매정마을의 용호언덕(龍虎原) 위에 세웠다. 당시 장말익의 후손인 장백손의 유허비도 함께 세웠다.
관시조 말익과 더불어 월계서원에 봉안되어 유가의 사표가 되다
1856년(철종 7) 고을의 사림에서 호월리(湖月里) 무월동에 월계사(月溪祠)를 짓고 장말익과 함께 봉향하자, 1862년(철종 13) 4월에 예조에서 월계서원(月溪書院)으로 승격했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었다가, 1924년 사림에서 사당을 고성2리 가원동(佳原洞)으로 이건하고 세덕사(世德祠)라고 불렀다가, 1927년 경덕사(景德祠)로 개칭하였다. 1945년 광복을 맞아 월계서원의 본래 명칭을 되살려 월계서원 내 경덕사(景德祠)에 봉안했다. 매년 10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를 지낸다. 신도비는 월계서원 남쪽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