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현판
15. 연어헌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이 자연과 벗하며 거처했던 유서 깊은 정자이다. 전면에 한글로 쓴 연어헌 현판이 하나 더 있으며 내부에는 무민재(无憫齋), 유정재(幽貞齋) 등의 현판과 시판이 걸려 있다. 솟밤다리에서 좌회전하면 청성산(靑城山) 기슭에 낙동강을 굽어보며 연어헌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에 중수된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에 2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측에 각각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자연석을 쌓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올리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의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누하주를 약간 길게 하여 루각식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권호문(1532∼1587)의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자는 장중(章仲)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1561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연이어 부모를 여의자 관계(官界)의 진출을 단념하고 청성산 기슭에 연어헌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처사적인 삶을 지향하고 실천했던 인물이다. 류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유하여 학행(學行)을 높이 평가받았다. 청성서원(靑城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송암집(松巖集)』이 남아 있다.


연어헌
연어란 연비여천 어약우연(鳶飛戾天 魚躍于淵)에서 온 말로 솔개가 하늘로 나는거나 물고기가 못에서 뛰는 것은 다 도(道)의 작용으로 나는 것을 관찰하면 위쪽에 닫는 것을 알 것이고 그 뛰는 것을 봄으로서 가히 아래 쪽에 닫는 것을 안다 라는 의미이다. 이 당호는 주세붕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연어헌기



무민재
강하고 약하고 굵고 가는 기법을 자유자재로 나타내어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행서체이다. 무민은 고민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역경에서
취한 것이다.



유정재
자칫 흐트러질 것 같은 시작을 강한 붓 놀림과 묵직한
표현으로 제 자리에 돌아오게 한 편안한 행서체이다.
그윽함으로써 바르다는 뜻으로 역시 역경에서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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