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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일록(南行日錄)』은 분애(汾厓) 신정(申晸 ; 1628~1687)이 1671년 겸보덕(兼輔德)에서 어사(御史)로 임명받고 9월부터 11월까지 영남지방을 암행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임명장을 들고 궁궐을 나와 관왕묘에 와서 봉투를 개봉하니 필자는 영남, 이차산은 호남, 조자우는 호서, 김중숙은 경기지방을 담당하게 되어 한강나루터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헤어지고 자신은 충주에서 한 노인을 만나 본 읍의 폐단을 듣고 조령을 넘어 문경, 함창 지역을 여행하며 촌가를 방문하여 군수의 치적을 묻고, 성주, 고령, 삼가, 진주, 통영, 울산, 영덕, 안동 등을 두루 순시하였으며, 촉석루와 남강일대의 경치에 감탄한 내용도 기술하였고, 통영에서는 관문에서 서기에게 결박을 당하고 매질을 당하는 사태가 있어서 부득이 마패를 보여주고 중상을 면하는 내용들을 기록하였다.
신정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인백(寅伯), 호는 분애(汾厓), 할아버지는 영의정 흠(欽)이고, 아버지는 참판 익전(翊全)이며, 어머니는 조창원(趙昌遠)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가학으로 학문을 닦았다.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 1664년(현종 5) 음보(蔭補)로 빙고별검(氷庫別檢)에 임명되었고, 그해에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바른 정사로 일세의 추중(推重)을 받는 이름난 재상이었고, 시문과 글씨에 뛰어나 관각(館閣)의 전책(典冊)이나 국가의 금석문자를 찬술한 것이 많다. 특히 시에 뛰어나 격조가 청절(淸絶)하다는 평을 받았다. 저서로는 『분애집』ㆍ『분애유고』ㆍ『임진록촬요(壬辰錄撮要)』 등이 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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