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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넷 오류 신고 게시판입니다.
  저속한 표현 시정 조치 요구의 건.
  장영수 접수중 2018.01.24 631
●유교넷→유교문화지도→지역인물→시내권→김영조→학문이야기
→스승 권두문(權斗文)과 김성일.
김영조는 8세가 되던 1584년(선조 17) 영천의 향학(鄕學)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그 곳의 몇몇 장로들이 자신을 어린 아이라 무시하며 대답조차 하지 않자 “예가 어찌 이와 같습니까?”라는 말로 힐난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어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사과하였다.
또한 이웃에는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이황의 문하에 종유하여 경학(經學)에 밝았던 장근(張謹)이란 인물이 살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겨 가까이 하지 않았던 반면 김영조는 홀로 그를 찾아가 스승의 예를 갖추어 섬기니, 장근 역시 김영조의 원대한 도량을 알아보고 성의를 다해 학문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얼마 뒤 김영조는 형제들과 더불어 당시 영천을 대표하는 학자인 남천(南川) 권두문의 문하에 나아가 본격적인 학업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5세가 되던 1591년(선조 24) 영천에 머물던 학봉 김성일을 배알하고 스승으로 섬기기 시작하였고, 1598년(선조 31)에는 서애 류성룡을 도심촌(道心村)으로 찾아가 예를 갖춤으로써, 퇴계학맥의 정수를 이어받게 되었다. 이후 이산서원(伊山書院)을 중심으로 인근의 학자들과 교유하며 영천의 학술을 주도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문과에 급제한 뒤 1608년(선조 41) 성균관에 나아가 학문을 연마하였다.

위 내용에서
이웃에는 비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이황의 문하에 종유하여 경학(經學)에 밝았던 장근(張謹)이란 인물이 살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겨 가까이 하지 않았던 반면 김영조는 홀로 그를 찾아가 스승의 예를 갖추어 섬기니, 장근 역시 김영조의 원대한 도량을 알아보고 성의를 다해 학문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위 내용
장근(張謹)에 대한 표현 중 ①비천한 신분. ②그를 천하게 여겨 등에 대한 표현을 시정조치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풍산(豊山) 김영조(金榮祖)가 벼슬은 했을지 몰라도 어려서 글을 배운 스승에게 저속한 표현을 하는 것은 근본도 없는 파렴치한 족속인 것이다. 장근(張謹)이 퇴계 선생을 지근에서 모시면서 말년을 함께한 인물인데 그러면 퇴계선생도 천박하고 비천한 인물 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장근(張謹)의 선대조는 조선개국공신도 있고. 태종 이방원과 함께 문과 급제자 21명이 충절을 맹세한 정미갑계원도 있고. 특히 1차 왕자의난때 정도전과 함께 이방원의 패거리에게 살해 당한 선대조도 있고. 단종 복위 사건때 관직을 버리고 영월로 은둔한 선대조는 통례문 봉례로 최초의 알성 급제한 분의 후손이 장근(張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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