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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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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명 |
풍산김씨 죽봉종택 1711년 8월에 이조에서 김간에게 내린 교지(敎旨)[104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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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자 |
이조 吏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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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자 |
김간 金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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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세기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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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크기(cm) |
54.0×7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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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소장처 |
한국국학진흥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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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장처 |
풍산김씨 죽봉종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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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주제분류 |
교령류(敎令類) > 교지(敎旨) > 교지(敎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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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711년(숙종 37년) 8월 20일에 내려진 교지이다. 이조(吏曺)에서 임금의 명을 받들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 김간(金侃)을 선무랑수성균관전적(宣務郞守成均館典籍)으로 임명한다는 교지이다. 선무랑은 동반(東班) 종6품의 위호(位號)이다. 전적은 성균관의 정6품 벼슬로 성균관의 학생을 지도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김간[1653(효종 4)∼1735(영조 11)]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사행(士行), 호는 죽봉(竹峯)이다. 아버지는 필신(弼臣)이며, 어머니는 예안이씨로 통덕랑 천표(天標)의 딸이다. 이유장(李惟樟)의 문인이다. 1693년(숙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01년 김장생(金長生)을 문묘(文廟)에 배향하는 데 반대하는 소를 올린 것으로 인하여 2년 동안 광양에 유배되었다. 1710년 58세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이듬해 황산찰방이 되어 선정을 베풀어 그가 떠난 뒤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 뒤 이수익(李壽益)의 천거로 사재주부에 임명되었다가 예조좌랑·예조정랑이 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유승현(柳升鉉)을 장수로 삼아 의병을 일으켰다가 난리가 평정되어 파하였다. 그 뒤 사예·병조정랑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고, 1732년 품계가 통정대부에 오르고 호군(護軍)에 임명되었다가 바로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가 되었다. 권두경(權斗經)·이재(李載)·조덕린(趙德隣) 등과 교우를 맺었다. 1788년(정조 12) 이진동(李鎭東) 등이 이인좌의 난에 공을 세우고 포상 받지 못한 31인의 치적을 상소할 때에 제일 앞에 놓였다. 낙연서원(洛淵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죽봉문집』 2책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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吏曺。康熙五十年八月二十日奉。敎權知承文院副正字金侃。爲宣務郞守成均館典籍者。康熙五十年八月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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